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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린 휴학일기, 2020년 결산

@225.kr 2021. 1. 13. 01:18

 꾸준히 일상을 기록하겠다고 블로그를 만들었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업로드가 뜸해졌다. 그러다 2021년이 되었고, 이젠 약 한달 반 후에는 다시 복학생이 된다. 휴학생활 기록은 물론 전공 공부에 대한 이야기, 인바디 결과 등 여유가 있을 때 조금씩 정리해야겠다. 해가 바뀐지도 2주가 다되었지만 더늦기전에 2020년 결산이나 하고자 한다. 코로나 때문에 힘들고 답답한 1년이었고, 내가 계획한 휴학생활을 할 수 있을까란 걱정도 많이했지만 결과를 보니 처음 계획했던 것 보다 더 의미있는 한해가 아니었나 싶다.

 코로나 확산 전 마지막 해외여행으로 일본을 다녀왔다. '코로나가 더 심해지기 전에 다녀오자'는 생각으로 간 건 아니었다. 오히려 코로나는 전혀 계획에 없었다. 최초 계획은 친한 형이 살고 있는 중국 청도 여행이었지만, 비행기표 예매 후 중국 우한에서부터 폐렴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여 계획을 수정했다. 처음에는 지금과 같은 코로나가 될거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그냥 가벼운 병이겠거니 생각하고 말았다. 우한과 거리가 꽤 있으니 괜찮을거라 생각했지만 여행일자가 다가올 수록 그게 아니었다. 결국 항공사로부터 수수료 없이 전액 환불을 받고, 일본 교토와 오사카로 계획을 바꿨다.

불과 1년 전에도 일본을 다녀왔기에 처음엔 크게 끌리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곳을 갔으면 싶었지만 동남아시아에서도 갈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큰 기대없이 군대 선임이었던 형과 둘이 여행을 했다. 우리나라도 그랬지만 일본에는 마스크를 끼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혹시나 싶어서 매일 열심히 끼고 다녔다. 방학에는 무조건 해외여행을 한번 이상 다녀와야한다는 의무감에 간 여행이라는 느낌이 있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본 특유의 적막하고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었다. 여러가지 추억이 많았다. 어느 버스를 타야할지 몰라 한참을 헤매다 버스를 놓칠까봐 한참 뛰었던 일, 여행 내내 흐리다 딱 하루 맑은 날 전망대에서 오사카를 내려다보고 유람선을 탄 일, 숙소에서 스트롱제로와 사케를 먹고 필름이 끊긴 채 술을 더 사러 나갔던 일, 첫 숙소를 찾아가는데 근처에서 길을 못찾고 있으니 2층 주택에 계신 아주머니가 길을 알려주신 일.

같이간 형이랑 여행 스타일이 너무 잘맞아서 여름에는 같이 유럽여행을 가기로 약속했었다. 유럽은 커녕 오사카 여행도 못가는 상황이 되었지만 말이다. 언제쯤 다시 해외여행을 갈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서 만약 이 때 일본여행이라도 가지 않았다면 얼마나 후회했을까.

 친한 동생의 아버지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게 되셔서 동생의 부탁을 받고 선거사무소에서 일하게 됐다. 원래 하던 알바가 있어서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는 못하고 매일 오전에 조금씩 일을 했는데, 아침 일찍 출근하는게 힘들긴 했지만 이색적인 경험이고 재밌었다. 선거를 어떻게 준비하는지, 몇명의 보좌관분들이 함께 하시는지. 쉽게 체험하기 힘든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내 또래 봉사자분들과 친해져서 얼마전에도 간단하게 회식을 했었다. 

원래 알바를 하는 곳과 선거사무소의 위치가 가깝다보니 점심을 먹고 시간이 조금 남았다. 그래서 친구랑 시민공원 근처에서 킥보드를 타며 드라이브아닌 드라이브를 하곤 했는데 이제 막 겨울이 끝나고 봄이 시작될 때쯤이라 날씨가 너무 좋았다. 행복했다. 시민공원을 돌기도 하고 어쩌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에는 온천천까지 갔다가 수영강까지도 다녀왔다. 햇빛은 따뜻한데 바람은 차가운 초 봄 특유의 느낌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었다.

 총선 일자가 다가오고 선거 사무실 업무가 끝날 쯤, 코로나로 인해 원래 일하던 회사를 잠깐 쉬게 되었다. 교육 관련 업종이라 코로나로 인한 타격이 꽤 컸기 때문에 나 뿐만 아니라 회사 자체가 2개월간 정지되었다. 크게 돈 쓸일이 없기 때문에 잠깐 쉬는 것도 한 방법이었겠지만 여름방학에 유럽여행과 국토종주가 계획되어 있었기에 돈을 모아두어야했다. 사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두 달이지, 그 당시에는 언제 다시 출근할지 기약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알바를 새로 구하기도 애매했는데 친구가 부산시 취업연수생 공고에 태그해주어 지원하게 됐다.

마침 그 시기가 전국민 재난지원금이 지급되던 시기였기에 일선에서 업무를 담당하는 동단위 주민센터에 인력충원이 필요하여 취업연수생이라는 타이틀로 일종의 아르바이트 인력을 통해 업무를 처리하고자 하는 계획이었다. 경쟁률이 매우 높았는데 205명을 선발하는 프로그램에 3122명이 지원했다. 지원폼에는 이름과 거주지 등 간단한 신상정보와 자격증만 포함되어 무작위 추첨이었다. 나는 최초선발에서는 떨어졌고, 후에 공석이 생겨 보충 선발되었다. 오륙도에 놀러가던 길에 그 연락을 받고 백수탈출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처음에는 소상공인 민생지원금 접수 및 서류처리 업무를 하였고, 내 계약기간은 2개월이었지만 예정보다 한 달이나 빨리 해당 업무가 마감되어 1차 재난지원금 업무로 옮겨가게 되었다. 그러면서 부산시청에서 파견나오신 일자리경제과 공무원분들과 함께 일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재난지원금 업무를 하면서는 주민센터 주사님과 공익분들, 같이 취업연수생을 하는 분들과 친해지게 됐다. 

행정병을 했던 경력 덕분인지 전화 응대나 상담, 서류처리 등 모든 업무를 어려움없이 수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지금 자리에 앉아서 공무원해도 되겠다는 식의 칭찬을 정말 많이 들었다. 2년 복무하는 공익도 아니고 고작 2개월 있었던 취업연수생이 간다고 다들 인사해주시는 모습에 감동받았다. 공무원분들의 노고를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고, 처음으로 사람을 직접 상대하는 일을 하며 다양한 사람을 경험할 수 있었다. 매일 오전 9시 출근에 저녁 6시 퇴근하는 일정이었지만 너무나 보람찼고 즐거웠다. 재난지원금도 예정된 지급기한에 비해 훨씬 일찍 지급이 거의 끝나며 후반에는 할일이 거의 없어졌었다. 근처에 식당이 몇개 없어서 매일 똑같은 음식을 돌려먹으면서도 점심시간이 즐거웠다. 점심을 먹고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해서 주민센터로 돌아오며 맞은 그 바람, 옥상에서 삽겹살을 배달시켜 먹던 일, 코를 찌르는 손소독제 냄새 모두 추억이다. 아직까지도 당시 같이 일했던 공익, 취업연수생 분들과 연락을 이어가는 것이 신기하다. 일로 만난 사이에 그치지 않는 것 같아 좋다.

 2019년에 이어서 컴퓨터공학 전공멘토링 활동도 열심히 했다. 휴학을 한 만큼 더 자주 활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코로나 덕분에 상반기 멘토링은 거의 취소되었다. 7월 쯤 다시 멘토링이 재개되었고, 2020년 첫 멘토링은 내 모교였던 고등학교, 그 다음날은 중학교였다. 특히 고등학교의 경우 20여개 학과 중 가장 많은 인원이 몰렸다는 점이 뿌듯했다. 총 121명의 학생들을 4번으로 나누어 멘토링을 진행했다. 덕분에 학교에서 가장 큰 수용공간인 도서관에서 멘토링을 진행했다. 모교로 멘토링을 가는 것이 2년차라 이번에는 따로 선생님들께 말씀드리진 않았다. 그런데 멘토링 전 간단한 오티가 끝나고 강의실로 가는 길에 방송부 선생님이 오셔서 인사해주시고,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으니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한동안 지켜보셨었다. 내 이름이 적혀있길래 나인가 싶어서 와보셨다고 한다.

멘토링을 몇 번 진행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코로나 때문에 많이 취소됐다. 멘토링을 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하반기에 여중 멘토링을 갔었는데, 멘토링을 하면서는 개인적인 연락처나 SNS를 알려줄 수 없게 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여학생이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멘토링을 잘 들었고, 유일하게 졸지 않은 시간이었다며 칭찬을 해주어서 너무 고마웠다.

 

 2월 생활관 동기들과의 경주 여행 후 가볍게 농담처럼 던진 '국토종주'가 현실이 되었다. 사실 2020년에 의미있고 쉽사리 하기 힘든 경험을 정말 많이했지만 그 중 최고가 바로 국토종주가 아닐까 생각한다. 처음에 계획을 하면서 하루 100km 정도 달려야한다는 것에 감이 별로 안왔다. 그리고 자전거를 타는 것도 별로 힘들지 않을 줄 알았다. 사전조사도 제대로 하지않고 여정을 시작하고 보니 생각지도 못한 경사의 언덕이 4개나 있었고, 당연히 그쯤에는 끝날 줄 알았던 장마도 종주 기간 내내 폭우 수준으로 이어졌다. 지도를 잘못봐서 길을 잘못들기도 여러번. 친구와 웃으며 즐겁게 출발했지만 후반부로 갈 수록 서로 지쳐 말 수가 줄었다. 종주 완료 인증 도장을 찍으면서 성취감과 후련함 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만 들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자전거를 반납하고, 김포공항 근처에서 덤덤하게 식사를 하고 헤어졌다.

강천보 근처에서 묵을 때 갔었던 위수지역 여관보다 시설이 안좋은 숙소, 매일 아침먹던 콩나물 국밥과 편의점에서 도핑약 마냥 챙겨두던 핫식스와 자유시간, 밤이면 샤워하며 기능성 티를 빨고 10시가 되면 맥주 한 캔 마신 후 잠들었다. 새벽 5시가 되면 일어나 다시 주섬주섬 짐을 챙겨 날이 밝기 전에 출발했다.

정말 힘들었다. 군대에서 하는 4박 5일 훈련에는 발끝에도 못미치지만 오랜만에 군대에서의 그 힘들었던 시간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두 번은 못하겠다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한 순간 한 순간이 너무나 소중한 추억이다. 먼저 다녀온 친구들이 갔다오면 진짜 큰 추억이라며 해줬던 말들의 의미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이 어려움을 극복한 경험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안들지만, 그냥 대한민국 국토를 일주일만에 누빈 내가 자랑스럽다.

 

 휴학하며 꼭 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외활동이었다. 그러나 자신만만하게 넣은 첫번째 대외활동은 순식간에 불합격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내가 면접을 본 순간은 방송부 면접, 대입 면접, 학생회 면접이 끝이다. 대입은 떨어질뻔 하긴 했지만 어쨌든 셋 다 합격했기에 거의 처음 겪어보는 불합격은 아찔했다. 멘탈이 꽤 무너졌지만 전국단위의 인기있는 활동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합리화했다. 이후 부산에서 진행되는 중소규모 교육봉사 대외활동에 지원했다. 나름 면접을 잘봤다고 생각했고, 면접장 분위기도 좋았지만 이번에도 선발되지 못했다. '내가 뭐가 그렇게 부족한가' 한참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았다. 이렇게 스트레스 받을 바에는 어짜피 난 대외활동이 중요하지 않으니 그냥 하지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합리화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서 이번에는 비교적 소규모로 보이는 대외활동에 지원했다. 마찬가지로 줌 면접에서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지만.. 불합격했다. 시간차를 두고 탈락 3연타를 맞으니 자괴감이 매우 깊어졌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활동을 하나는 꼭 하고 싶어서 이 학번을 달고 결국 학교 중앙동아리 중 교육봉사와 관련된 동아리에 새로 들어갔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번째로 떨어졌던 대외활동에서 추가합격 소식을 받았다.

나름 짧은 시간에 공모전 도전을 위해 촬영 및 영상 제작도 하고, 수차례의 봉사활동을 진행했다. 하나는 중학 교과 멘토링, 하나는 초등 멘토링인데 후반부터 활동했음에도 벌써 봉사시간 20시간을 모았다. 코로나로 인해 멘티들과 큰 유대감을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교육자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충분히 가치있는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원래 일하던 회사에서 어떻게 하다보니 부산경남 지역 코딩메이커 수업의 강사로 활동하게 됐다. 내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전혀 명시되어 있지 않은 일이지만 내가 미래에 해야할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니 거절없이 받아들였다. 사실 거절을 할 상황도 아니었던 것이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듯 했지만 이미 다 결정된 상황이었기에 통보나 다름없었다.

많게는 일주일에 3번, 적게는 한번씩 회사에서 최대 2시간 반이 걸리는 학교까지 수업을 하러 가야했다. 때문에 학교에 8시까지 도착하기 위해서 새벽 5~6시에 출근해야할 때가 많았다. 겨울이 시작되는 시기의 새벽은 상당히 추웠다. 바깥 온도와 대비되는 차량 내부 히터 때문에 쏟아지는 잠을 피할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움직이는 왕복 4시간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수업을 하러 갔던 학교는 대부분 분교로 전교생이 약 50명 이하인 학교들이었다. 하지만 내 고정관념속의 분교와는 달리 학교 시설도 아주 깔끔하고 경치나 분위기도 좋았다. 학생들도 순수해서 정말 즐겁게 수업할 수 있었다.

힘들고 피곤했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다른 멘토링에 비해 훨씬 내 미래의 모습과 가까운 일이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는데, 수업은 내가 계획하고 예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 학생들과 어떻게 수업을 진행해야하는지 등 직접 수업을 진행하며 이전에는 몰랐던 것들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수업으로 모교였던 중학교에 갔는데, 고등학교 1학년 때 역사 선생님이셨던 분이 나를 알아봐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고등학교 졸업한지도 4년이 다되어 가는데다가 당시 우리반 수업을 한 것도 아니었는데 보자마자 알아봐주시고, 친근하게 대해주시는 것에 감동받았다.

 올해 가장 큰 수확이자 결실은 규칙적으로 꾸준히 운동하고 공부하는 습관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운동은 4월 말부터, 공부는 5월부터. 그전까지는 시간을 흥청망청 쓴 느낌이 없지않아 있지만 본격적으로 계획을 하며 시작한 이후로는 지금까지도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운동은 주6일 하루 2시간씩, 공부는 매일 4시간 이상 하려고 노력 중이다. 

사실 아직도 운동은 내가 맞게 하고 있는건지 확신이 잘 안든다. 공부도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은 길어졌고, 공부를 해야한다는 의식은 박혔지만 순수하게 최대로 집중하여 효율을 내는 시간은 길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그렇지만 휴학을 하며 세웠던 가장 큰 목표가 이러한 습관의 형성이었던 것처럼, 이를 활용하여 내년과 내후년에 조금씩 발전시켜 나가다보면 충분히 좋은 결과를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