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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인천까지, 국토종주 준비하기

@225.kr 2020. 8. 9. 23:36

농담이 현실이 되기까지

 올해 2월, 생활관 동기들과 경주 여행을 다녀왔다. 1박 2일의 짧은 여행을 마무리하고 고속버스를 타야하는 친구들을 기다려주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한 친구가 여름에 '국토대장정'이나 하자는 말을 농담처럼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국토종주와 국토대장정의 차이를 몰랐던 우리는 스쿠터를 타고 부산부터 파주까지 대장정을 하자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했다. "일주일정도 일정 잡고 부산에서 출발하는거지" "마지막에는 남미상회(파주) 앞에서 사진찍자" 옆에서 듣는 친구들은 그냥 하는 말이겠거니 생각했을테고, 대화를 주고 받는 우리도 현실이 될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시간이 흘러 5월, 6월. 친구가 먼저 그 이야기를 다시 꺼냈다. 그 때까지는 스쿠터로 국토'대장정'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스쿠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이나 전기스쿠터 모델별 특징 정도를 찾아왔다. 그때부터 우리의 국토종주는 진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스쿠터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면허를 딴지 4년이 넘었음에도 부모님은 아직 운전을 하지말라고 하시는데다 오토바이는 절대 안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출퇴근용으로 전동킥보드를 타고 다니긴 하지만 스쿠터는 글쎄.. 절대 허락을 못받을 것 같았다. 친구가 알아온 방법은 정부지원으로 스쿠터를 저렴하게 구입하는 방법이었는데, 지원수량이 한정적이라 최소 3개월전에 미리 구입해놓고 몇달은 숨겨야했다. 그것도 나름대로 머리가 아팠다. 무엇보다 스스로도 갑자기 걱정이 됐다. 스쿠터는 인도는 물론 자전거 도로도 이용할 수 없다. 무조건 차도를 타야하고 경우에 따라 국도나 큰 도로를 타야할 일도 있을텐데.. 600km가 넘는 거리를 안전하게 다녀올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결국 친구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스쿠터가 아닌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친구는 개인적으로 전기스쿠터를 구매했다. 갑자기 계획을 바꾼게 미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입장을 이해하고 "자전거로 하는게 더 감성있지"라며 오히려 긍정적으로 반응해준 친구에게 고마웠다.

 

국토종주 갈 수 있을까?

 그쯤에서야 알았다. '국토대장정'은 두 발로 걸어서 국토를 탐방하는 것, '국토종주'는 자전거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하는 것임을. 우리는 자전거를 이용한 국토종주를 하기로 결정하고 별다른 계획을 짜지 않다가 7월이 다 되어서야 조금씩 세부적인 내용을 논의했다. 둘 다 전동킥보드, 전동스쿠터는 있었지만 정작 자전거는 없었다. 자전거를 취미로 타는 것도 아닌데 자전거를 구입하긴 아까워서 대여를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후로 중간중간 간단한 내용만 카톡으로 공유했을 뿐 이렇다할 계획이 없었다. 그러다 처음에 종주를 하기로 이야기했던 여름방학이 가까워졌다. 그런데 여기서 첫 난관에 봉착했다. 휴학생이라 시간이 차고 넘치는 나와 달리, 친구는 3학년 2학기를 준비하는 이번 여름방학부터 졸업눈문을 준비하는 실험실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방학에도 평일 내내 실험실 출근을 해야하는 탓에 여행 일정을 정하기가 어려웠다. 심지어 실험실 담당 교수님도 학과 내에서 빡빡하기로 소문난 교수님이라고 했다. "실험실 탈출할까" "다른 실험실로 바꿀까"같은 이야기를 하다가 결론은 교수님께 정중히 허락을 구하고 정면돌파하기로 했다.

그런데 교수님께 허락을 받으려면 정해진 날짜가 있어야할텐데.. 이번에는 또 장마가 문제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장마가 지금처럼 심하진 않았다. 그냥 비가 계속 오는 정도였다. 우리는 비를 맞으면서까지 자전거를 타고 싶진 않았다. 장마기간이 언제까지인지 불확실했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7월 말 경 장마가 끝난다는 네이버 지식인의 글을 보고 8월 첫주를 종주기간으로 잡았다. (그러나 이 장마는 호우주의보가 되어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

 자전거 대여문제도 해결해야했다. 친구가 부산으로 내려와서 같이 출발할 예정이었기에 부산에서 자전거를 대여하는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부산에는 그런 업체가 없었다. 전국으로 확대해도 찾기가 정말 힘들었는데, 운좋게 찾아도 지점이 서울에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그러다가 '바이크로'라는 업체를 발견했는데, 국토종주용 자전거 대여를 전문으로 하는 곳 같았다. 픽업서비스도 가능하다고 적혀있긴했지만, 서울에서 부산까지 픽업은 조금 어려울거라 생각하며 전화를 했다. 내가 예상한 반응은 '부산은 너무 멀어서 힘들 것 같다.' 또는 '부산까지 가게 되면 픽업비가 10만원 정도다.'라는 말을 예상했는데, "마침 그 앞주에 서울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팀이 있어서 가능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덕분에 픽업비는 따로 내지 않고, 그 분들이 타고오신 자전거를 내가 받아서 보관했다가 점검을 받고 출발하는 방식으로 자전거 대여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됐다.

 

본격적인 국토종주 준비

 자전거 대여문제를 해결하고, 남은건 일정만 확정지으면 됐다. 우리끼리는 8월 3일부터 8일까지로 정했지만 가장 중요한 실험실 일정 조정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여행을 할 수 있을지가 확실하지 않았다. 친구가 4학년 선배에게 먼저 여쭤보았는데 다행히 교수님 허락을 받고 빠질 수 있을거라는 긍정적인 답을 얻었다. 이후 교수님께도 여쭤봤는데 정기모임 때 이야기하자는 답을 하셔서 확정이 되지 않았다. 그 사이 내가 먼저 알바를 빼고, 친구의 일정만 기다렸는데 실험실 정기모임 날짜가 교수님 사정, 학교 사정 등으로 계속 밀리다가 7월 말이 되어서야 진행됐다. 다행히도 친구는 우리가 계획했던 기간의 실험실 출근을 빠질 수 있게 됐다. 우리 여행에서 가장 머리가 아팠던 부분이 모두 해결됐다.

 이후 종주 기간이 임박했기에 본격적으로 이것저것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능성 티나 전조등, 후미등같은 장비들을 구입하고 매일 얼마나 자전거를 타야할지, 어디부터 어디까지 가야할지 세부적인 내용도 조사하고 계획했다. 날짜가 다가오고나서야 부랴부랴 계획을 짠듯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래도 출발 전 금요일에 필요한 모든 물품이 준비되었다. 내가 준비했던 물품들과 계획은 아래에 첨부해두겠다.

8월 2일, 일요일임에도 외부 프로그램 진행이 잡혀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일을 해야했다. 퇴근 후 짐을 챙기고 천안에서 내려오는 친구를 데리러 부산역으로 갔다. 오후 11시쯤 친구를 만나 우리집으로 와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는 행복한 여행을 그리고 있었다.

여행 세부계획

군대 동기와 가는 여행이다보니 계획도 군대 스타일에 맞춰서 작성했다. 인사행정병 출신이라 2년 내내 이런 양식을 숱하게 보고, 작성했다보니 오랜만에 작성했음에도 그 폰트, 색상, 서식을 정확히 구현해낼 수 있었던게 신기하다.

준비했던 물품
1. 기능성 티 3벌
2. 기능성 레깅스 3벌
최대한 짐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가벼운 옷 3벌씩만 준비했다. 6일 일정임에도 3벌만 준비하여 매일 입은 옷은 숙소에서 직접 빨아 말렸다. 조금 덜마르는 경우도 있었지만, 날씨가 더웠던 탓에 짐칸에 매달고 달리면 금방 말랐다.

기능성이라 얇으면서도 자외선 차단이 잘 됐고, 땀이나 비도 잘 마르고 바람이 잘 통해서 시원했다. 비오는 날이 많을 것 같은데 비싼 걸 입으면 훼손될 것 같아서 '아르메데스'라는 가성비 제품을 구입했다.
3. 아디다스 반바지 2벌 레깅스 위에 패드바지를 입고, 그 위에 반바지를 입었다. 
4. 팔토시 2개
5. 스포츠 타올 2개
팔이 타지 않게 하기 위해 팔토시를 2개 챙겼다. 장시간 착용해야 하기에 심하게 조이지 않으면서도 흘러내리지 않는 제품을 구입했는데, 1개만 챙겨갔어도 충분했을 것 같다. 검은색과 흰색을 챙겨갔는데 흰색은 흙탕물이 튀거나 타이어를 교체하며 묻은 이물질 때문에 금방 더러워졌다.

땀 흘릴 걸 각오하긴 했지만, 땀을 제때 닦아내지 않으면 더 더울 것 같아서 스포츠 타올을 챙겼다. 물로 적셔서 더 시원하게 쓸 수 있어서 나름 좋았다.
6. 라이딩용 마스크
7. 선글라스
얼굴은 타지 않도록 선크림을 바르긴 했지만 땀과 비 때문에 잘 지워질 것 같기도 했고, 선크림만으로는 충분히 보호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잠깐 쉴때를 제외하고는 마스크로 눈 아래와 귀부터 모두 가리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렸다.
8. 공기주입용 미니펌프
9. 타이어 수리키트 2개
10. 타이어튜브 1개
11. 렌치, 드라이버 등 공구키트 (소형)
 * 튜브 교체법 및 펑크 수리법 꼭 숙지하고 갈 것!
조언을 구할 때마다 꼭 챙겨가라고 했던 장비들이다. 챙겨가도 펑크가 나겠나 싶어서 짐만 될거라 생각했지만,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총 4번의 펑크가 나며 나름 유용하게 쓰였다.

펌프는 무게가 꽤 있으니 최대한 작고 가벼운 것, 수리키트는 온라인에서 사면 더 싸게 살 수 있다. 타이어 튜브의 경우 적정 사이즈가 따로 있다고 하니 출발 전 점검을 받으며 구입하는 게 괜찮을 것 같다. 한 개에 만원 정도 한다.
11. 휴대폰 거치대
12. 대용량 보조배터리
생각보다 자전거 도로가 굉장히 잘 되어 있어서 표지판이나 바닥에 그려진 길을 보고 주행해도 큰 무리는 없다. 그러나 표식이 제대로 되지 않은 곳도 꽤 많고, 도로를 우회해야 할 경우도 있기 때문에 시간과 체력을 낭비하지 않으려면 지도를 수시로 확인해야한다.

지도를 볼때마다 멈출 순 없으니 휴대폰을 거치해놓고 계속 보면서 주행해야하는데, 장시간 휴대폰 화면을 계속 켜두니 배터리가 아주 빨리 닳아서 보조배터리로 충전하며 확인했다.
13. 전조등
14. 후미등
야간 라이딩은 위험하니 하지말라는 사람이 많았다. 애초에 할 계획도 없었지만, 첫날에는 펑크를 수리하다보니 해가 순식간에 저물었다. 하필 창녕에 가로등도 잘 없는 길이라 전조등과 후미등이 없으면 큰일 날뻔했다. 괜히 샀나 생각했지만 유용하게 잘 썼다. 

뿐만 아니라 능내역으로 가는 길에도 터널이 3~4개 정도 나오는데, 내부에 조명이 있긴 하지만 전조등을 켜는 것이 좋다.
15. 자전거 자물쇠 필수품..!
16. 속옷 5개
17. 양말 5개
18. 지퍼백 3개
속옷과 양말은 기능성이 아니라서 잘 안마를까봐 5개씩 챙겼다. 지퍼백의 경우는 덜마른 옷을 보관하는 용도도 있지만, 중간에 비가 올 때 새 옷이나 가방 속 전자기기가 젖지 않게 보호 하기 위해서 대형으로 3장정도 챙겼다.
그외 삼각대, 액션캠, 세면도구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