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 말 다녀온 일본과 경주여행을 끝으로 코로나 때문에 장기간 여행을 하지못한 탓이었는지, 며칠 전 문득 들었던 생각이다. '혼자서라도 국내여행을 다녀봐야겠다.' 국내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도' 단위로는 안가본 곳이 없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곳들만 다녔을 뿐 아직 주목받지 못한 곳들은 거의 가본적 없다. 그리고 여행을 갔다해도 친구들이랑 웃고 떠들며 경치좋은 곳에서 사진이나 찍고, 해가진 후 숙소에 들어가서는 술이나 마시다 끝나는 일정들이라 과연 이게 진짜 여행이 맞는가에 대해 항상 의구심이 들었었다.
무엇보다도 혼자 여행을 해본 경험이 2017년 가을에 갔던 순천 정도 밖에 없었다. 혼자 여행할 기회도 딱히 없었거니와 일행없이 돌아다니며 혼자 밥을 먹고, 숙소에서 잠을 청하고, 사진을 찍는게 부끄럽기도 하고 많이 외로울 것 같았다. 문득 이런 경험을 하게 된 건 혼자 휴학을 하고 보니 생각보다 학기 중인 친구들과 시간맞춰 여행하는게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올해 최대 목표로 했던 트래블리더에서 미선발되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명분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아무튼 여러가지 명분으로 이 기회를 통해 혼자 잘 알려지지 않은 국내의 아름다운 장소들을 여행하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성장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혼자서 여행을 시작했다.
첫 여행지 : 기장 용수웰빙공원
사실 여행이라 하기에도 부끄럽다. 동해선을 타고 40분정도 달린 뒤 걸어서 20분이면 도착하는 아주 작은 공원이었다. 여행을 다니겠노라하는 마음을 먹고 그 장소를 어디로 해야할지, 처음이니 먼 도시보다는 부산 근처에서 시작하는게 낫겠지라고 생각하며 경남권을 찾고 있었는데 마침 페이스북에 이 곳이 올라왔다. 사진이 너무 예뻐서 보자마자 결정했다. 그런데 나중에 댓글을 보니 보정이 좀 심하다고 하더라. 실제로 가봤던 사람들이 대거 등장해서 보정안한 실제 사진을 올리며 다들 자기가 봤던 풍경이랑 다르다고 그랬다. 그래도 마음이 변하진 않았다. 나도 사진은 잘 못찍어도 보정에는 자신있었으니까.
계획은 오전부터 가는거였지만, 하필 그 날 점심약속이 생겼다. '아직도' 군인인 친구와 1년만에 보는 약속인데 그 친구가 다른 날은 안될 것 같다고 그래서 여행을 다음으로 미루기로 생각하고 친구를 만났다. 어짜피 오전에 출발하지 못할테니 아침 일찍 집을 나서서 2시간정도 운동을 하고, 점심시간에 딱 맞춰 친구를 만났다. 카페거리에서 하루 30그릇만 한정판매하는 대창덮밥을 먹고, 예쁜 카페에서 비싸고 양 적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군대 이야기 그만하자고 했지만, 그러면서도 본인이 계속 군대 이야기를 했다. 5시쯤에는 친구도 가야해서 남은 2시간 정도를 뭐하며 보내야할지 생각했다. PC방을 가자고 했는데, 완강히 거부하다가 타협점을 찾은게 방탈출이었다. 한참 적절한 테마를 찾다가 하나를 골랐다. 처음 40분을 초반부에 쏟아부으며 힌트를 3개나 쓰다가 마지막에는 막힘없이 풀어서 결국 2분정도 남겨놓고 탈출했다.
친구는 갈 시간이 되어 나를 기차역 부전역 근처에 데려다주고 다음을 기약했다. 오후 4시 48분, 굉장히 애매한 시간이었다. 지하철이 아니라 기차다보니 배차간격도 20분 이상이었다. 동해선을 타러 한참 걸어가다 멈춰서서 예상 도착시간을 계산해보니 5시 30분이 훌쩍 넘을 것 같았다. '그냥 오늘은 집에 돌아가서 공부나 할까'하고 잠시 망설이다 일몰 시간을 보니 오후 7시 49분 쯤이었다. 가서 노을을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되돌아가지 않았다.
한참 기차를 타고 달려 기장역에서 내린 뒤 위쪽으로 쭉 직진했다. 역부터 공원까지 길이 직선이라 딱히 지도를 안봐도 됐다. 나는 길치임에도 불구하고 느낌으로 방향을 찾아갈 수 있었다. 20분정도 걸었다. 이제 진짜 여름인지 햇빛이 너무 강했다. 땀을 뻘뻘흘리며 도착한 곳에는 사진에서 보던 저수지가 있었다.
늦은 오후였음에도 해는 꺾일 기세를 안보였다. 안그래도 강렬한 태양이 저수지에 그대로 반사되어 열기는 2배가 되었다. 정중앙에 정자가 있었고, 그 안에는 아주 강한 바람을 불어주는 선풍기가 있었다. 혼자서 회전하는 선풍기를 따라 움직이며 카메라를 꺼내고 삼각대를 펼쳤다.
태양이 너무 강하게 역광이라 좋은 사진을 찍기 어려웠다. 거기다 모자까지 썼더니 얼굴에 그늘이 너무 많이져서 기대했던 것만큼 사진을 많이 건질 수 없었다. 아쉬운대로 풍경이라도 많이 담아보려고 했지만, 정말 사진에서 보던 저수지가 거의 끝이라 아무리 각도를 바꾸며 촬영해도 비슷비슷한 사진이 나왔다. 그마저도 집에와서 확인해보니 잘나온 사진은 몇 장 되지 않았다.
한참 저수지만 구경하다 옆에 있는 산책로를 따라 걸으니 저수지를 크게 둘러 걸을 수 있었다. 하필 해질 무렵이라 모기가 너무 많았다. 나도 모르게 두군데나 물렸는데 가려운거 참으면서 긁지도 않았는데 붉게 상처가 생겼다. 다행히 모기는 현장에서 사살했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아니면 원래 사람이 많이 오는 곳이 아니라 그런지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마스크를 벗고 그냥 걸었다. 사진찍기 좋은 장소는 얼마 없었지만 나무가 많고 산 속에 있는 공원이라 공기는 아주 맑았다. 길을 따라서 한참 걷다가 다시 저수지로 올라가 뒷편으로 내려가봤다.
여기는 반대로 해가 거의 비치지 않았다. 사진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계단 양옆에 해바라기가 자라고 있었다. 왜 이렇게 애매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는지 모르겠다. 오전이나 오후 둘중에 한번만 해를 보면 되는건가? 긴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체력단련 시설물들이 있어서 다시 올라왔다.
볼건 없었지만 그냥 천천히 걷고 사진 찍고, 앉아서 쉬다보니 공원에 온지 2시간이 지났다. 노을을 보고 싶었지만 일몰까지 시간이 꽤 많이 남아서 그냥 해가지기전에 다시 내려왔다. 기장역에서 동해선을 타고, 거제역에 내린 뒤 지하철로 갈아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건 여행이 아니라 산책 정도로 보는게 맞겠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도 아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동네에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작은 공원하나 보고 왔으니 말이다. 오는 길에 전주국밥이라도 먹고 올걸 후회된다. 마침 국밥 먹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딱히 교훈이 없다. 교훈을 찾으려고 여행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느낀게 없으면 없는대로 두는 여행을 하고자 한다.
딱히 고민이 있거나 한 것도 아니라서 공원에 있으면서 깊게 생각을 한 것도 없는데,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들었던 생각은 하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려오다보니 어릴 때 살았던 김해, 양산의 모습과 꽤많이 닮아있었다. 그래서 다음 여행은 김해와 양산으로 가기로 했다. 아침일찍가서 어렸을때의 추억을 하나하나 찾으며 추억팔이나 해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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