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비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왠만한 태풍이 왔을때보다 더 많이, 단기간에 비가 내린 것 같았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물이 발목까지 잠기고, 길에 있는 맨홀들은 물이 계속 역류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몇시간 지나지않아 언제 그랬냐는 듯 너무 맑아졌다.
작년부터 참가했던 중고등학교 전공멘토링이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이제야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마침 처음으로 열리는 학교가 내 모교인 중학교와 고등학교였다. 그것도 이틀 연속이었다. 중학교는 행사가 오전이라 운동을 가는 대신 멘토링을 간 후 알바 출근했지만, 고등학교는 오후였던지라 이 날 하루 출근을 하지 않기로 했다.
중학교는 졸업 후 거의 처음 가보는거라 감회가 새로웠다. 졸업한지 어느덧 7년이 지났는데도 내 기억속의 모습 거의 그대로였다. 생각보다 바뀐 부분도 많았지만, 복도를 지나가며 교실에서 수업하고 있는 그 때 그 선생님들을 보니 정말 반갑고 향수가 느껴졌다. 중학교는 3학년은 매일 등교하지만, 1학년과 2학년이 일주일씩 번갈아 등교한다고 했다. 내가 멘토링을 했던 화요일은 하필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한지 11일 밖에 안됐을때였다. 멘토링을 수강하는 학생들이 중1이었는데, 이제 막 초등학교에 올라온데다 친구들과도 서먹한지라 분위기가 엄청 좋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듣는 학생은 조금 적었지만, 반응도 나쁘지않았고 나름대로 관심을 가지며 이런저런 질문도 아주 많이 해줬다. 아직 대학에 대해 생각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기인지라 컴공을 가겠다고 마음먹은 친구들은 거의 없었지만, 다들 대학에서 어떤 걸 배우는지 정확히 알아가는 듯 했다. 마스크를 항상 착용하고, 친구들이랑 거리유지하도록 선생님들이 항상 제한하며 수업이 끝날때마다 책상과 의자를 닦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다.
바로 그 다음 날인 수요일은 고등학교에 갔다. 고등학교는 작년에도 이맘때쯤 멘토로 방문했던지라 새롭다기보다는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땐 꽤 많은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물리실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이번에는 학교 본관에서 가장 큰 도서관에서 멘토링을 진행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체 신청인원이 107명이었다. 고등학생 1, 2학년이 모두 듣는 것을 감안해도 거의 1/4 정도는 컴공을 듣는다는 것이다. 왠지 모를 으쓱함을 느끼며 담당 선생님의 OT를 들었다.
그런데 전공 멘토링을 담당하는 진로부장 선생님이 마침 내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셨다. 일부러 선생님들께는 말씀을 안드리고 가서, 끝나고 교무실에 잠깐 들릴 생각이었는데 이미 알고 계셨다. 선생님은 OT때는 안오셨다가 멘토링을 시작하고 난 후 2층에서 5층까지 직접 올라오셔서 내가 멘토링하는 모습을 잠깐 지켜보다 내려가셨다. OT를 마치고 올라가는 길에는 안그래도 찾아뵈려고 했던 방송부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부르며 왜 온다고 말 안했냐고 하셨다. 마스크를 쓰고 있는데도 알아봐주시는게 감사했다.
도서관에 도착해서 빔프로젝터도 내가 켜고, RGB 선도 직접 찾아 연결하고, 앰프도 내가 켜서 마이크를 사용했다. 방송부장직을 내려놓은지도 4년이 넘었는데 버벅임 없이 척척할 수 있는게 신기했다. 내가 학생일 때 사용하던 장비들이 먼지 쌓인채로 그대로 있는게 신기했다.
한 교시마다 30명 정도의 학생들이 들어왔다. 앞쪽에 앉아 열심히 필기하며 듣는 학생들, 뒤쪽에 앉았지만 질문은 많이하는 학생들, 딴짓하기 바쁜 학생들 등 다양한 부류가 있었지만 다 내가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 하던 모습 그대로라 기분이 나쁘거나 하진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추억을 느끼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1교시부터 4교시까지, 4번이나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이 반복하려니 좀 힘들었다. 그래도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해주려고, 내가 고등학생 때 궁금했지만 알기 어려웠던 내용들을 재밌게 풀어내려고 노력했다. 아무래도 다들 컴공에 가려고 하는 학생들은 아니고 4개의 전공 소개를 들어야하다보니 컴공을 선택한 친구들도 있어서, 실제 대학행사 사진을 보여주고 간단하게 이야기를 해줬을 때 반응이 제일 좋았다. 그 다음으로는 내가 선배라는 걸 소개할 때 다들 신기해했다. 질문 시간에는 컴공에 대한 이야기보다 선생님들에 대한 옛날 이야기가 더 많았다.
오랜만에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하니 진이 빠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체력을 꽤 많이 썼다. 도서관을 정리하고 다시 1층으로 모이니 학교가 시범학교로 선정되어서 대학생 멘토들이 학생들의 궁금증을 상시 해결해 줄 수 있는 채널을 만들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정보 과목을 담당하는 선생님과 톡방을 만들고, 이 것이 어떤식으로 운영될지 간단한 내용을 들었다. 누군가는 귀찮은 일이 생겼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단순히 나 혼자 말하는 멘토링을 넘어 실제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역할을 할 수 있단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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