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대외활동에 지원했다. 올 2월쯤 지원했던 트래블리더에 불합격한 후 다른 활동을 찾아보거나 빨리 대외활동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냥 매일 조금씩 공부하며 휴학생활을 보내던 도중 청춘어람이라는 활동을 발견하게 됐다. 대학생들이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멘토링, 강연 등을 하는 활동이었다. 내가 모집공고를 읽은 시기는 6월 27일 쯤. 서류 접수 마감은 7월 1일이었다. 활동 내용을 보자마자 너무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긴했지만, 짧은 기한동안 수없이 고민했다. '내가 몇백명 앞에서 강연을 할 수 있을까?', '공부나 여행갈 시간을 너무 많이 빼앗기진 않을까?' 이틀내내 그 고민을 하며 하루에도 수십번 지원여부를 번복했다. 6월 29일이 되어서야 확신이 섰다. 지금 지원하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았다. 해당 단체의 블로그를 수차례 읽다가 지원서를 작성했다.
8문항 정도 되는 지원서에 약 4000자 정도 작성했던 것 같다. 이틀만에 작성한 지원서치고는 지금까지 써봤던 자기소개서, 지원서 중에 제일 잘썼다는 느낌이 들었다. 늦은 시간까지 작성하고 맞춤법 검사, 최종 정독을 한 뒤 이메일로 제출했다. 내가 보낸 메일은 보낸지 얼마 되지 않아 읽혀졌다.
7월 1일 지원서를 제출하고, 바로 그 다음날이 서류 합격자 발표였다. 그리고 그주 토요일은 면접이었다. 총 지원자 수가 몇명이었는진 모르겠지만 18명의 서류 합격자 중 한 명이 되었다. 면접은 3:1로 진행되어 각자의 면접 시간이 있었고, 나는 오전 9시경 부터 시작되는 면접의 3번째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부산대 근처 면접장소로 향했다. 조금 빠듯하긴 했지만 5분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며 내가 제출했던 지원서를 천천히 읽어내려갔다. 제출 직전 두번정도는 더 읽은 것 같은데 그때는 발견하지 못했던 문장의 어색함이 곳곳에 숨어 있었다. 지하처를 타고 가는 도중에도, 면접장소에 도착하여 안내위원들과 이야기를 하면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미 선발된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고 모든 과정을 진행했다. 면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면접을 진행하면서도 전혀 떨리지 않았다. 지원서에 있는 내용이 질문으로 나올 것 같다는 내 예상과 달리 다양한 상황에 대한 대처법을 묻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면접시간은 약 20~25분정도였는데 체감상 아주 빨리 끝났다. 면접을 마친 후 서류를 작성하러 4층으로 다시 올라가며 시계를 보니 20분 시간에 맞춰 진행되긴 했더라. 왠지모를 자신감이 있었다. 학생회장 경험, 전공 멘토링 경험과 나름 만족스러운 지원서 내용까지. 그리고 긴장하지 않고 면접을 봤다는 것이 메리트로 작용하지않을까 생각했다.
아주 큰 오산이었다. 이틀 후 월요일, 최종 선발 결과를 기다렸다. 몇시에 발표될지 감을 잡을 수 없어서 아침부터 블로그만 들락날락했다.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불합격하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별로 되지 않았다. 내심 불안했다. 내가 걱정하지 않는 일들은 내 예상과 반대로 되고, 걱정하는 일들이 오히려 잘 풀리는 머피의 법칙이 항상 강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부러 더 걱정하려고 했다. 걱정되지 않는 일을 걱정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오전에 헬스장을 갔다가 출근해서 일하고 있는 도중에 문자가 왔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문자에서 중간 단락에 있는 '아쉽지만' 이라는 글자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덤덤하다가 금방 충격이 되었다. 간절히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졌던 기간은 길지 않았지만 그에 비해 충격은 꽤 컸다. 트래블리더에 이어 2번째 고배였다. 18명의 서류 합격자 중 몇명이 최종 선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불합격했다. 처음에는 잘못온 문자이기를, 정정 문자가 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냥 하루종일 우울했다. 휴학생이 된 후 무언가 의미있는 활동을 하고자 했는데, 그런건 하나도 없다. 매일 공부를 하고는 있지만 그렇게 공부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내가 공부를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한달 조금 넘게 공부했는데 아직도 프로그래밍 예제 하나 해결하는데 며칠씩 걸린다. 운동도 인바디 수치는 조금씩 좋아지고 있지만 정체기에 접어든 기분이다. 여행으로 휴학생활을 즐길 수도 없다. 그런 와중에 대외활동까지 연속으로 불합격하니 그냥 인생이 한심스러웠다.
솔직하게 말해서 안해도 되는 대외활동이었다. 합리화가 아니라. 임용고시를 통한 교사가 되길 희망하고 있는 나는 대외활동이 필요없다. 만약 임용이 아닌 개발자의 길을 걷게 되더라도 강연을 하는 대외활동이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지원했던 이유는, 나는 대외활동으로 얻는 스펙보다 경험과 가치를 더 중시하기 때문이다. 나에게 아무런 스펙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살면서 수많은 학생들 앞에서 강연을 진행하는 기회를 가져볼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내가 중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하는 많은 고민들, 그리고 짧은 인생에서 느꼈던 교훈들을 솔직하게 전해주고 싶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도 재미없고 수업만 하는 선생님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 미리 연습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아쉬운 것 같다. 스펙을 찾는거였다면 수많은 대기업 대외활동에 다시 지원하면 되니까.
나는 이번 면접의 결과를 내 오만과 자만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지원서도 잘썼고, 면접도 잘봤으니 합격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실제로 나는 말을 장황하게 하느라 면접 답변에 횡설수설하며 핵심에 어긋난 답변을 했을 것이다. 내가 자신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도 면접위원들에게는 '오만'이었지 않을까. 적당히 긴장하는 모습을 보이며 질문의 핵심을 파악했어야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불합격의 상처는 금방 아물었다. 청춘어람을 대체할 다른 활동을 찾아보고자 했지만, 시기가 시기인지라 모집을 하는 대외활동이 매우 적거나, 나의 흥미와는 안맞았다. 무엇보다 이와 비슷한 활동 자체가 없었다. 나는 다만 항상 겸손하자는 교훈을 하나 얻었다. 지금 선발되어도 3학년 말까지 활동을 해야한다는 사실이 부담스러웠고, 만약 내년에 지원하면 4학년 말까지 활동을 해야한다는게 부담스러워서 꼭 올해 합격하길 바랬다. 그냥 생각을 바꿔서 내년에도 또 하고 싶다면, 내년에 다시 지원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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