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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에서 여유 찾기 마지막 날, 2월 18일

@225.kr 2020. 2. 21. 01:49

끝이 있는 여행

 여행의 마무리는 항상 아쉽다. 그런데 솔직히 이번 여행은 별로 안그랬다. 너무 많이 걸어 진이 빠진 탓인지, 아니면 그토록 오고 싶어하던 일본에 5일이나 있으며 질리도록 경험했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또 여행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정들었던 숙소와 작별했다. 10시까지 체크아웃 하지 않으면 추가료 만원을 부과한다고 해서 일어나자마자 급하게 나왔다. 며칠을 있었음에도 체크아웃 직전에서야 숙소사진을 찍었다.

안녕 지구인. 

 사실 전날 우리는 계획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음에도 마지막 날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게을러서는 아니고, 갈만한 곳을 몇시간을 뒤져도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사진 찍을 만한 곳도 없었다. 겨우 하루로 오사카를 다 둘러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무계획으로, 마지막 날은 진짜 '여유'를 느끼기로 했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또 알바, 공부, 취업준비에 바쁠테니 할일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그냥 여행의 마지막을 음미하기로 했다.

 크게 한건 없다. 도톤보리로 가서 유명한 덮밥을 아점으로 먹었다. 웨이팅도 꽤 있었고, 가게 안에도 손님이 많았다. 김치를 추가할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일본에서 먹은 음식들 중에 가장 맛있었다. 역시 나는 한국음식말고는 잘 못먹겠다. 점심을 먹고 강에 앉아 5천원짜리 아이스크림을 먹었다ㅎ 또 500원인줄 알고 사먹었는데 생각해보니까 5천원이더라. 분명 점심을 먹을 때까지는 하늘이 맑았는데,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으니 또 먹구름이 몰려왔다. 춥기까지 했다. 그래서 결국 캐리어를 맡겨둔 숙소로 다시 돌아와서 로비에 앉아 시간을 떼우다 다시 공항으로 돌아갔다.

간사이 공항으로 가서는 그 근처에 규카츠 맛집과 예쁜 바다가 있다고 해서 마지막 코스로 정해뒀는데, 둘다 공항 근처가 아니라 공항에서 '가깝기만'한 곳이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생각보다 공항에 늦게 도착해서 수속까지 남은 시간이 얼마없었다. 일본음식을 먹으려고 그동안 그렇게 기피했던 맥도날드 스파이스 치킨버거 세트를 끝으로 일본에서의 식사와 일정을 마무리했다. 수속을 마치고 게이트 앞에 앉아 걸으며 하던 것처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내가 먼저 비행기를 탑승하며 이번 여행은 끝났다.

실패한 마지막 날

 어떻게 보면 마지막날은 매우 실패했다. 일부러 저녁 8시 비행기로 예약했는데 할게 없었고, 조금찾아본 것들 마저도 정확히 알아보지 않은 탓에 무엇하나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우리 계획대로 된 것은 도톤보리 덮밥집에서 밥을 먹었다는 것 정도? 다시 숙소로 돌아가서 조금만 일찍 나왔으면 바다는 볼 수 있었을텐데 라는 아쉬움은 남지만 후회는 아니었다. 마지막날은 마지막날 답게 루즈하고 여유로웠다. 흘러가는 시간과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그제서야 여행이 끝난다는게 실감났다. 지금까지 수많은 국내여행과 해외여행을 마무리지었지만, 귀국하기도 전에 이런 감정이 드는 건 처음인 것 같았다. 

 

우리가 배운 것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게 많다. 그동안의 여행에서는 재미만 추구하거나, 무언가를 배워야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그런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정말 무언가 깨닫고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계획이 없는 사람은 여유로울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배운 것이다. 계획없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목표만 있으면 절대 여유로울 수가 없다. 어떻게, 언제, 무엇을 할지 아무 생각도 없이 목적지만 바라보고 있으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알 수없고 얼마나 해두어야할지 알 수없어서 충분한 여유가 있음에도 여유를 누릴 수가 없다. 셋째날 우리의 모습이었다. 여유를 찾겠다며 삼일을 방황하고 비로소 나흘이 되어서야 진짜 여유로울 수 있었다. 

부지런하지 않은 사람은 여행을 할 수 없다.

언제부턴가 무계획 여행의 감성이라는 미명으로 아무 준비도 없이 여행을 떠나왔다. 지금까지는 잘 진행됐지만, 이번 계기를 통해 무계획은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배웠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는게 무계획이 아니라, 최소한의 준비는 하고 그 후의 내용들을 순간순간 채워나가는 것이 무계획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를 보러갈 때도 어떻게 가야할지, 어디서 만나야할지는 준비하는데 해외에 나가면서도 아무생각도 하지 않는 건 어리석은 것 같다.

 

 

 벌써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당장 이틀 후 경주 여행도 있고, 3월초에도 여행을 갈 예정이지만 그냥 이제야 알게된 이 여유를 조금만 더 누리고 싶었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정말 일본 여행을 했구나 싶을 정도로 많은 곳을 보고 느꼈냐고 물으면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은 없다. 실제로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행을 통한 사고의 확장을 이루었기에 충분히 만족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 여행을 위한 삶이아니라 여행같은 삶을 살라는 말이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앞으로의 내 삶에서도 계획을 통해 조금 더 여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오사카 마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