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초 입대 후 벌써 4년이 다되어간다. 전역한지도 2년이 지났다. 많은 군필자들에게 군 생활은 다시 돌아가기 싫은 악몽이겠지만, 나는 한번 더..는 무리고 한 달정도는 다시 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달에 400만원 이상 주면 1년도 가능. 대신 대대에 있었던 사람들 그대로 다 와야한다. 아무튼 그만큼 재밌고 나름 행복한 군생활을 했다.
전역한 뒤로도 군대 친구들과 꽤 자주 연락했다. 친하게 지내던 선임이랑 일본 여행도 다녀왔고, 특히 생활관 동기들과는 반기에 한 번정도는 다같이 모여 여행을 갈 정도로 자주 연락을 하며 모였다. 생활관 구성원 10명이 사는 지역이 각각 부산, 창원, 수원, 서울 등 이곳 저곳에 흩어져있지만 1박 2일을 위해 꽤 장거리를 오갈 정도로 서로에게 생활관 자체가 즐거운 추억이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생활관은 현역답지않게 재밌게 놀았다. 신서유기에 나올 법한 게임들을 하고, 취사반에서 냉동파티를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컨텐츠를 짜고, 자체적인 규칙을 정해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려고 하는 등 모두의 적극적인 참여로 군대 생활관 보다는 고등학교 기숙사 느낌으로 지냈다.
전역 후에도 꾸준히, 자주 만날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당시 생활관에서 최고 연장자였던 95 라인의 나이가 스물셋이었는데, 이제 내 나이가 스물셋을 훌쩍 넘어 스물 다섯이 됐다. 나는 1년 더 휴학을 했기 때문에 올해 3학년으로 아직도 학교를 다니지만, 일반적이라면 나와 같은 학번도 올해는 4학년 졸업반이고.. 나보다 한 두살 많은 96~95 동기들은 이미 졸업 후 취업과 자격증 준비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여행에 부담을 느끼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10명 중 아홉으로 시작했던 부산 여행 이후로 한 번의 해외여행, 그리고 춘천과 경주까지. 춘천에서는 7명, 경주에서는 5명.. 점점 참가 인원 수가 줄었다. 처음에는 방학, 그것도 주말에 이틀 시간을 못내는 동기들한테 서운하기도 했다. 사람이 적은 것보다 많은게 훨씬 재밌으니까, 그리고 뭐가 됐든 다같이 모인다는 것에 의미를 뒀기때문에. 지금은 이해한다. 취업 준비 중에 여행을 간다는게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도 자연스레 이해하게됐다.
그래서 이쯤에서 여행을 끝내기로 했다. 여행을 가자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반응이 없으니 힘들고, 매번 제안을 거절하는 친구들도 미안할 것 같아서 이쯤에서 정기적으로 다니던 여행은 마무리 짓기로 했다. 원래 작년 여름에 가려고 했던 여행이 무산되고 올 겨울을 마지막으로 하기로 이미 몇달전에 결정했는데, 마지막 여행이라는 말에 7명 정도가 참여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행이 가까워오며 재확산된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위한 5인 이상 집합금지와 더불어 취업 준비가 생각보다 빠듯한지 참석을 못한 친구들이 많아 결국 마지막 여행은 셋이서 진행하게 됐다.
마지막 여행은 동기 한명이 자취하고 있는 천안으로 가기로 했다. 첫 계획은 제주도나 스키장이었지만, 한창 스키장 집단감염으로 욕을 먹던 시기라 스키장은 제외하고.. 인원이 적어 제주도도 제외했다. 호캉스를 가자는 의견이 오갔지만 참석하기로 했던 동기들이 대거 불참으로 바꾸며 의욕을 잃은 와중에 친구가 자취방 집들이나 오라고 해서 천안에 가게됐다. 진짜 집들이를 가진 않았고, 천안에 있는 글램핑장에 갔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동기들까지 합하면 다섯이었지만 그 중 두명은 결국 못왔다.
그렇게 생활관 마지막 여행이 시작됐다.
오후 3시 쯤 천안아산역에서 만나 고기를 비롯한 글램핑에 필요한 것들을 구입하고, 택시를 타고 글램핑장으로 이동했다. 우리가 간곳은 에스글램핑이라는 곳이었는데 천안에서 꽤 유명한 곳인지 기사님도 그렇고 천안에 살고 있는 다른 동기도 글램핑을 간다고 하니 단번에 그 곳을 말했다. 시설은 좋았다. 다만 생각보다 글램핑 내부는 좁고, 다른 곳들에 비해 별로였다. 글램핑 내부에는 진짜 냉장고랑 침대가 끝이었다. 손이나 접시를 씻을만한 곳도 전혀없다. 그래도 족구장, 수영장, 썰매는 물론 샤워시설같은 공용시설은 깔끔했다. 그릇을 씻거나 세면을 위해서는 걸어다녀야 한다는게 좀 번거로웠다. 무엇보다 겨울이라 수영장은 운영하지 않는 상태였고 썰매장도 닫혀있었다. 있어도 20대 중반 남자 셋이서 이용을 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김에 그냥 바로 고기나 굽고 술이나 마셨다.
삼겹살과 목살을 구웠다. 글램핑 감성이랍시고 추워도 버티면서 야외에서 바베큐를 하고 있는데 먹으면 먹을 수록 너무 추웠다. 분명히 3시까지만 해도 따뜻하고 오히려 더울 정도였는데 해가 질 때가 되자마자 추워져서 급하게 고기를 굽고 내부로 들어왔다. 내부에서는 밖에서 구워온 고기와 부대찌개를 먹으며 본격적으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다들 술을 많이 마시진 않아서 인당 소주 2병, 맥주 2캔이 되도록 샀는데 술이 모자랄 것 같아 매점에서 2병 더 사왔다. 술 마시면서 하는 이야기는 매번하는 군대 이야기. 서로의 근황이야기도 했지만 역시 군대 동기들이다보니 군대 이야기가 제일 재밌었다. 이전에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를 또 해도 또 재밌었다. 어떤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그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꼬리를 물었다.
중고등, 대학교 친구들과 또 다른 군대 친구들 만의 즐거움이 있는데 마지막이라는 것도 아쉽고, 마지막인데 다들 바빠서 못 온게 더 아쉬웠다. 그래도 어짜피 5인이상 집합금지 때문에 여기서 한명 밖에 더 못왔을거라며 합리화했다. 이미 지나버린지 한참이 된 군생활 이야기를 한참동안 하다 인당 3병 정도 마시고 새벽에 잠자리에 누웠다. 우리 생활관은 참 시끄러운 생활관이었다. 다들 특수보직인지라 일하는 처부가 달랐는데, 개인정비가 끝나고 결산시간만 되면 서로 일과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 바빴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점호 후 취침시간에도 30분씩 떠들다 자는건 흔한 일이고, 가끔 새벽 1시까지 노는 날도 있었다. 이 날은 몇시간 동안 이야기를 할만큼 해서인지, 아니면 사람이 적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술을 꽤 마셔서 인지 다들 눕자마자 잠들었다.
11시 퇴실을 앞두고 10시 10분쯤 겨우 일어났다. 숙취는 없었지만 목이 너무 건조해서 물을 한참 마시다가 겨우 이불을 정리하고, 어제의 흔적들을 정리했다.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먹고 대충 씻은 뒤 천안에 살고있는 다른 동기가 우릴 데리러 와줘서 그 친구 차를 타고 체크아웃했다.
천안은 처음 가봤는데 (군인일 때 독립기념관도 안감) 진짜 할만한 거나 볼만한게 아무 것도 없었다. (지역비하 아님) 그대로 내려가긴 아쉬운 마음에 어디라도 들렸다 가자고 해서 '나름' 유명한 단대호수에 갔다. 범준이형이 걷자고 꼬시던 그 단대호수.. 전날도 그렇고 우리가 있는 내내 안개가 자욱해서 단대호수도 딱히.. 그냥 넓은 저수지 같았다. 날씨라도 맑았으면 좋았을텐데
진짜로 단대호수 조금 걷다가 주말 오전이라 손님없는 루프탑 카페에 들러서 또 군대이야기 했다. 우리를 데리러 와준 친구는 다른 생활관이었지만 우리 생활관 동기 2명이 나중에는 그쪽으로 넘어가기도 했고, 나도 생활관 막내인지라 말년에는 그 생활관에서 한달정도 생활했기 때문에 우리와 꽤 접점이 있었다. 그리고 그 친구한테 제3자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들으니까 또 재밌었다. 파도파도 끝이없는 군대 에피소드들..
1시 40분 KTX를 예매했는데, 이야기하다보니 1시가 다됐다. 분명히 마지막에 시계 확인했을 때 12시였는데 같이 부산으로 내려가는 친구가 늦겠다고 해서 보니까 1시였다. 천안아산역으로 가는 차에서는 친구가 부산에 왔을 때 있었던 이야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운전해준 친구와 조금 급하게 인사하고 헤어졌다. 주차하기엔 번거롭고 차를 대고 와도 우리는 10분 안에 기차를 타야하니 내리면서 다음에 밥 사겠다고 진심이 가득담긴 약속을 하며 쿨하게 떠났다.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며 마지막으로 천안자취생 동기와 인사하고, 우리가 각자 KTX의 좌석에 앉은 후 기차가 출발하며 마지막 여행도 끝났다. 마지막 여행이라는 말은 끝난다는 느낌이 들어서 아쉽기만한데, 더 이상 방학마다 '놀러가자'고 제안하지 않겠다는 의미일 뿐, '이제 너희랑은 여행 안간다. 우리 생활관 여행은 더 이상 없다'는 의미는 아니라며 나중에 다들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안정적으로 마친후에 다시 같이 여행가기를 기약하며 마무리지었다.
주말이라 그런지 부산으로 내려가는 기차에는 유독 사람이 없었다. 내가 타고 있는 칸에도 나빼고 한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래서 인지 어느 여행보다 더 여행후유증이 많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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