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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인천까지, 국토종주 4일차(예천 → 문경 → 충주 → 여주)

@225.kr 2020. 8. 19. 23:02
  • 이동경로 : 상주상풍교 → 문경불정역 → 이화령휴게소 → 수안보온천 → 충주탄금대 → 비내섬 → 강천보 → 여주보
  • 이동시간 : 오전 7시 출발, 오후 6시 종료(약 11시간)
  • 이동거리 : 약 157km

 

비가 내리다 말다, 우산을 펼칠까 말까

 게스트하우스 거실에서 같이 묵었던 아저씨는 먼저 출발하시고, 우리는 그보다 30분 정도 더 지나서야 출발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손빨래를 하다 처음으로 세탁기를 돌린 덕에 뽀송뽀송해진 빨래들을 챙기고, 짐을 쌌다. 전날 쏟아진 갑작스런 소나기를 보아하니 비가 올거라고 예고된 오늘은 하루종일 그만큼 비가 오겠구나 싶어 옷, 전자기기 등 젖으면 안되는 물건들을 미리 준비해둔 지퍼백에 넣은 뒤 가방에 넣었다. 전날 장거리를 달린 탓인지 계획보다 30분 정도 늦게 일어나서 아침은 못먹었다. 참고로 상주보 자전거 민박에서는 조식으로 컵라면, 공기밥, 그외 반찬 등을 제공한다. 

배가 조금 고프긴 했지만 참고 1층으로 내려가 자전거를 꺼냈다. 1층 펜션형 숙소에서 머물던 분들도 각자 출발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전날 밤 1시간이 넘게 씨름하며 고쳤던 친구 자전거 뒷 바퀴는 예상대로 또 바람이 빠져있었다. 원래 숙소에서 상주상풍교까지 사장님이 픽업을 해주기로 하셨는데, 같이 픽업을 받는 분들 중에도 앞바퀴 펑크난 분이 계셔서 사장님이 근처 삼천리 자전거 수리점에 데려다주기로 하셨다. 출발 직전에는 날씨가 많이 흐리긴했지만 빗방울이 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트럭을 타고 수리점으로 향하는 길에 갑자기 비가 미친듯이 쏟아졌다. 차를 타고 20분 정도 갔던 것 같은데, 한참 비가 오더니 도착할 쯤에는 언제그랬냐는 듯 그쳤다.

수리점 오픈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한 탓에 6명이서 그 앞에 앉아 기다렸다. 그 사이에 나랑 친구는 바로 옆에 있는 이마트24 편의점으로 가서 못먹은 아침을 대신하여 간단하게 삼각김밥 정도로 끼니를 대신했다. 잠시 후 수리점 사장님이 오셔서 점검을 받았다. 친구는 튜브를 갈았고, 나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이참에 점검이나 한번 더 받았다. 5대 모두 점검이 끝나고 다시 최종 픽업 장소인 상주상풍교로 출발하려는데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비를 맞으며 겨우겨우 트럭에 자전거를 싣고, 상풍교를 향해 갔다. 가는 내내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했다. 올때는 부슬비도 아니고 그냥 폭우가 쏟아졌다. 하루종일 이러겠구나 싶었다.

 

"이화령을 조심하세요."

 출발 일주일 전, 대여한 자전거를 받기위해 낙동강 하구둑으로 갔다. 바이크로가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일반적이라면 픽업비를 내야했지만 마침 그쯤 인천에서 부산으로 내려오시는 분이 계셔서 그분들이 탄 자전거를 그대로 받아 우리가 타기로 했다. 자전거를 타고 오시는 분께 오후 2시쯤 도착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어떤 젊은 남자분이 갑자기 인사하며 다가오셨다. 차림을 보니 지금 막 국토종주를 끝내신 듯 했다. 왜 말을 거시는지 몰라 나도 인사를 했는데, 종점 표지 앞에서 사진 한 장만 찍어달라고 하셨다. 

그 날은 부산 1차 장마가 막 끝난 직후라 하늘도 너무 맑고, 그래서 너무 더웠다. 그래서 인지 굉장히 지쳐보이셨는데 그 분 휴대폰으로 사진을 몇장찍어드리니 감사하다면서 혹시 국토종주 하시냐고 물어보셨다. 그렇다고, 근데 지금은 자전거 받으러 왔고 다다음주쯤 출발예정이라 말씀드리니 "그러면 가시는 길에 이화령 조심하시라"고 하셨다. 그게 뭔지 물어보기에는 사전조사를 너무 안한게 티가 날 것 같아 웃으며 알겠다고 조심하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다 그 이화령을 4일 째 되던 날 마주쳤다. 사실 이튿날 박진고개와 영아지고개를 넘으며 4대 업힐의 존재를 알게 됐다. 이화령이 거기 들어간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리고 오늘은 이화령을 거쳐갈 수 밖에 없는 루트였다. 부디 비가 오지 않을때 빠르게 극복할 수 있기를 빌었다. 꽤 감성있는 문경불정역을 지나 이화령휴게소로 향했다. 어느 순간 긴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왕복 2차선 정도의 차도에 양옆에는 자전거 도로가 이어져있었다. 길은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였다. 문제는 오르막이 끝도 없었다. 박진고개만큼의 경사는 아닌 것 같은 느낌이었지만, 한참 긴 오르막이 끝없이 이어졌다.. 일어난지 몇 시간 되지도 않은 상태라 너무 힘들었다. 시작부터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었다. 다행이었던 것은 우리가 오르막을 오르던 중에는 비가 거의 안왔다는 것. 정상에 오르고 나서야 조금씩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안녕 경기도

 비가 계속 와서였는지, 이화령을 만나서였는지. 낙동강만 지나면 고생 끝일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100km의 새재자전거길도 꽤 힘들었다. 비에 젖는 것은 체념하고 자전거를 타다보니 비내섬을 지나 새재자전거길을 끝냈다. 애석하게도 우리가 쉴때는 비가 그치고, 한창 달릴때는 비가 세차게 내렸다. 예상보다 힘들긴 했지만 이제 진짜 한강까지만 가면 고생끝일 거라 생각했다. 지금까지는 인증센터나 그 주변에 인프라가 부족했지만, 수도권으로 올라왔으니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다. 충주에서 경기도로 바로 올라가는 줄 알았는데 자전거길을 따라 라이딩을 하다보니 강원도 원주시에 온 것을 환영한다는 비석을 만날 수 있었다. 강원도까지 들렀다는게 신기했다. 그런데 더 신기한 것은 강원도에 들어서자마자 구름 가득해던 하늘은 온데간데 없고 맑은 하늘에서 해가 내리쬐고 있었다. 더 이상 우의를 입을 필요가 없었을 뿐 더러 입고 달리기에는 너무 더워져서 벗어버렸다. 방금까지 비를 맞았는데 불과 몇km나 더 왔다고 맑아진 하늘을 보니 반가웠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가 왔던 길 쪽에는 아직 먹구름이 드리워져있었다. 사실 종주를 시작하고 처음보는 맑은 하늘이었다. 1~2일차에도 비만 안왔다 뿐이지, 구름이 많아서 파란 하늘은 보이지가 않았다. 한강 자전거길부터는 편안한 길만 남았음을 알려주는 행복한 전조가 아닐까 기대했다.

하지만 조금 안타까운 점은 강 근처에 경찰과 구급대원분들이 많았는데, 보아하니 폭우에 실종된 분들을 찾고 계시는 것 같았다. 날씨가 맑아진 틈을 타 산책을 하러나온 분들도 계셨는데 뭔가 그 두 상황이 대비되는 느낌이라 마음이 마냥 편치는 않았다. 살면서 딱 한번 와본 강원도를 자전거로 왔다는게 신기했다. 어느 덧 길고 긴 국토종주도 절반을 넘겼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면서도 부디 남은 코스를 잘 마무리할 수 있길 빌었다.

 달리다보니 금방 강원도를 벗어났다. 강원도 원주를 벗어나 우리가 진입한 곳은 경기도 여주시였다. 드디어 경기도까지 왔고, 한강을 달릴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쭉 길을 따라 나아가다보니 어렵지 않게 강천보 인증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대부분의 인증센터와 달리 확실히 '한강'의 느낌이 들었다. 산책하는 사람도 많았고, 대형 편의점도 있었다. 이때 쯤 시간이 오후 4시 정도 되어 오늘 숙소는 어디로 잡는게 좋을지 검색해보니 근처에 프랜차이즈도 많고 먹을만한 것도 많았다. 그런데 생각보다 모텔이나 숙소는 많지 않았다. 여주시청 바로 근처를 찾아봐도 군대에 있을 때 위수지역에나 있던 바가지가 낀 여관처럼 생긴곳이 대부분이었다. 기대했던 수준의 모텔이나 숙소는 없는 것 같았다.. 그래도 하루만 자면 된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강천보와 여주보 사이에 있는 그 숙소로 들어갔다.

겉에서 봤을 땐 그냥 낡은 건물이고, 들어가서 봐도 마찬가지다. 숙박비는 인당 15,000원으로 저렴한 편이었는데 방이 다 나가서 우리는 좀 작은 방을 받았다. 2명이 누울 수 있는 큰 침대가 하나 있었고, 그리 작지는 않은 화장실이 딸려 있었다. 방에는 TV나 냉장고 등 있을만한건 있었지만 많이 좁아서 테이블과 침대 사이에 사람 두명이 지나가긴 좀 힘들어보였다. 경기도에서 기대했던 그 인프라가 아니라 솔직히 좀 실망은 했지만, 같이간 친구가 생활관 동기였던지라 동기외박 느낌도 나고 나쁘지 않았다.

 

숙소에 간단히 체크인 후 짐만 놔두고 가벼워진 자전거를 타고 여주보로 향했다. 숙소에서 여주보까지는 매우 가까웠다. 여주보까지 가서 스탬프를 찍고, 다시 여주시청 근처로 돌아와서 뭘 먹을까 고민하다 부대찌개를 먹었다. 전문 프랜차이즈가 아니라서 더 맛있는 느낌이었다. 식당에 TV로 수해 상황이 나왔다. 뉴스를 보다 깜짝 놀랐던 것은 우리의 최종 목적지였던 파주 남미상회, 문산 근처가 다 물에 잠겼다는 내용이었다. 버스가 도로에서 침수될 정도였다. 아무래도 파주는 못가겠구나 싶었다. 뿐만 아니라 당장 서울쪽도 한강이 모두 침수되었다는 뉴스를 볼 수 있었다. 자전거길이 통제됐다는 내용은 없었지만 차도까지 통제하는 상황에서 자전거길이 열려있을 가능성은 만무했다.

결국 저녁을 먹으면서까지 걱정을 한아름 안고, 숙소에서 먹을 간식거리를 사러 나왔다. 다이소, 명량핫도그, 올리브영 등 프랜차이즈가 아주 많았다. 먼저 다이소에 가서 가방 커버를 사려 했는데 그런 제품이 없어서 김장 비닐을 샀다. 그리고 숙소에서 맥을 캔맥주 하나와 명량핫도그를 사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가방에 있는 짐을 모두 김장비닐에 넣고 그걸 가방에 다시 넣었다. 이렇게 하면 가방은 젖더라도 짐이 젖을 걱정은 없었다. 

마땅히 뭘 먹을만한 장소가 없어서 침대 위에 앉아 핫도그와 맥주 한 캔을 홀짝였다.